풍기농부 권우현 - 漢城 百濟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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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城 百濟를 가다


수 년 전 개통된 지하철 9호선에 한성백제역이 있다 

그 역의 도로명 주소는 송파구 위례성 대로이다 한성백제라는 명칭이 드디어 공공장소에 보통명사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제하면 공주와 부여를 연상하게 하지만 700여년의 역사중 공주와 부여는  200년이 채 되지  않으며 나머지 500여년의 역사는 바로 한성백제의 역사이다 

삼국사기에서 백제는 주몽의 아들 온조가 남하하여 세운 최초의 국가로 처음에는 十濟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 후 온조의 형인 비류가 미추홀(인천)에 정착하였으나 도읍지로 적합하지 않아 온조와 합쳐지면서 百濟로 불리어지면서 한성백제의 시대가 시작이 된다고 한다

중국의 隨書에서는 만주의 요하지역에서 거주하던 백여호가 바다를 건너 (百家濟海) 남하하여 건국하여 백제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으나 아직은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지는 않고 있다 다만 많은 신진 사학자들이 백제의 중국관련 설은  많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기대가 된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 얼마전 88올림픽 유치를 결정하고 그리고 2년 후 1981년 독일의 조그만 도시 바덴바덴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기적이 일어난다

선진국들이나 개최해 오던 올림픽이  1988년에 한국에서 개최가 결정된 것이다 

당시 유치 위원장이었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포효하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80년대 나는 서울은행에 다니던 시절 풍납동에 지어진 조합주택인 우성아파트(21평형 분양가 19백만 정도)에 살던 시절이다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후 얼마 지나고 부터 아파트 건너편에 지금의 올림픽 공원의 공사가 시작된다


한성백제의 흔적들을 찾아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40여년 전 신혼으로 돌아가 본다 공사가 시작된 시골 길에

유모차를 끌고 다녔던 그 곳이 바로 현재의 올림픽공원 이다 


주차를 하고 먼저 찾은 곳은 한성백제 박물관이다 을축년 대홍수가 알려준 풍납토성의 비밀이라는  기획전 포스터가 우리를 반긴다 1925년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피해를 가져다 준 홍수이며 이 때 홍수로 인해 암사동 선사 유적지와 풍납토성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입장하니 박물관 공사중이라서 1층에 있는 풍납토성의 축성 장면만 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몽촌토성으로 옮긴다 


1970년 대 강남개발이 시작되기 시작했으나 이  곳까지는 미치지 못하였고 88올림픽이 유치되면서 이 곳은 상전벽해를 이룬다 

올림픽과 관련된 채육관들과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등 여러 시설물들이 들어 서면서 현재 올림픽 공원 내에 있는 몽촌토성의 발굴도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다

 40여년 전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길 건너 산책하러  나섯던 곳이 바로 지금 걷고 있는 몽촌토성이다


올림픽공원 공사와 함께 시작된 몽촌토성의 발굴 결과 4세기 전후 지배충과 밀접한 백제 유물이 다량 출토되고 연못 도로등 왕궁에 준하는 구조가 발견되어 발굴 당시로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곳을 한성백제의 근거지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하게된다 

높이 45미터의 자연 구릉으로 동문 남문 북문을 연결하는 2.7키로로 구성된 성곽은 해자와 목책을 설치 적을 방어하기에 중요한 요충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한성백제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이 황색깃발을 한 군대를 사열했다는 기록의 현장이 여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평지에 위치한 풍납토성과 연결된 이 곳이 오늘날의 수도경비사령부 또는 국방부의 모습이 아니였을까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우리도 황색 깃발의 백제군을사열하는 기분으로 토성 한바퀴를 돌아보고 다음 목적지 풍납토성으로 향한다


풍납토성 주차장을 검색하니 천호대교 인근 주차장으로 안내한다

현재 풍납토성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서벽은 유실되었고 북벽 동벽 남벽만 2.2키로 남아 있고 유실된 서벽을 포함하면 전체 길이 3.5키로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천호동 북쪽 끝에서 출발하여 남벽으로 향한다 출발하자 마자 바로 풍납동 주민들이 걸어 놓은 지하 2미터 규제를 즉각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토성으로 인해 지하 재산권 행사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북성벽을 조금 지나니 풍납 전통시장이 나타난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토성 안에 시장이 형성된지가 꾀나 오래된 듯하다 이 곳도 발굴대상 지역이 아닐까 괜히 걱정스러워진다  좁은 도로를 계속해서 내려가니 곳곳에 아직도 발굴 중인 흔적들이 여러군데서 보인다 

1997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기와와 도자기등이 대량 출토 된다 발굴된 유물로 이곳을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하고 한성백제의 한강유역이 당시 중국의 동진 가야 일본과 교역의 중심이 되는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음이 증명된다고 한다 경단지역에 위치한 경단 역사 공원과 풍납백제 문화공원을 지난다  

다시 조금더 걸으니 1500년 전에 목제로 만들어진 우물터를 만난다 뻘 속에서 발견된 목재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고학계의 큰 뉴스임에 틀림이 없다 

 

마지막으로 동성벽 공원을 지나서 야트막한 남성벽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에 서서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3만 군대에 멸망한 처절했던 위례성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후 백제는 공주로 천도하고 한성백제는 여기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1500년 동안 고고학계에서는 위례성의 위치를 두고 두고 갑론을박만 계속해왔다


한성백제 박물관 1층에 풍납토성의 축성 비밀이 잘 설명되어 있다 

토성은 높이 10미터 넓이 40미터 길이 3.3키로를 흙으로 한축씩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판축기법으로 쌓은 토성은 현재의 콘크리트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고 한다 이를 현대 공학으로 계산 해보니 10톤 트럭 15만대 연인원 100만명이 동원되어야 된다고 추정하니 당시 한성백제의 국력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남성벽 전망대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니 길 건너에 40여년 전 살았던 풍납동 우성아파트가 재개발되어 고층 아파트로 재 단장되어 있다  쏜살처럼 지나가 버린 세월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한다 당시 풍납토성은 쓰레기더미와 호박구덩이가 대부분이 었는데 격세지감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지금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급변한 시대에 떠밀려 살아 가고 있는 게 아닌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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